영동당곡리십이장신당(永同堂谷里十二將神堂)


시도민속자료  제2호 (영동군)

충북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 산32

이 건물은 중국(中國)의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12장신(將神)의 영정(影幀)과 관운장(關雲長)의 적토마(赤토馬) 그림을 모셔 놓은 신당이다. 당곡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빌고, 병과 재해(災害)와 악귀를 쫓기 위하여 관성제군(關聖帝君)에게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제주(祭主)와 마을사람이 제사를 올린다. 제(祭)의 순서는 재배(再拜), 헌작(獻酌), 고축(告祝)의 유교식(儒敎式)이며 제의 비용(費用)은 마을소유의 위전 600평에서 충당한다. 관우사당(關羽祠堂) 또는 관왕묘(關王廟)라 부르는 이 신당은 원래 상촌면(上村面) 고자리(高子里)의 산중(山中)에 있었는데, 관우장군이 당시의 군수(郡守)에게 현몽(現夢)하여 고곡리(古谷里)로 이전하기를 원하여서 동민들이 사우(祠宇)를 짓고 동제(洞祭)를 지냄으로써 당곡리로 개명(改名)하였다 한다. 이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마루와 신당으로 구성된 목조(木造)의 맞배기와집이며, 우측의 사방 1칸의 별각(別閣)에 적토마의 화상(畵像)을 걸어 놓고 있다. 12장신(將神)은 관운장(關雲長), 장익덕(張翼德), 제갈공명(諸葛孔明), 조자룡(趙子龍), 황충(黃忠), 장유(張維), 마초(馬超), 마직(馬稷), 요화(寥化), 위연(魏延), 창위(菖偉), 마축(磨竺)이라 전하며, 중국의 관왕묘신앙과 한국 동제(洞祭)의 말신앙(馬信仰)이 복합된 형태이다.
......................................................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12장군의 초상화와 관우장군의 적토마 그림을 모셔 놓은 동제당의 일종으로, 장군들 가운데 관우장군을 주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관우신당’, ‘관왕묘’라고도 부른다. 처음에는 상촌면 고자리 산중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당시 군수의 꿈에 관우장군이 나타나 고곡리로 이전하기를 원하여 이곳으로 옮기고, 지명도 신당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당곡’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한다.

건물은 앞면 2칸·옆면 1칸의 마루와 신당(그림을 모셔놓은 곳)으로 구성된 목조 기와집으로,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을 얹었다. 건물 오른쪽에는 사방 1칸짜리 조그마한 별채가 있는데, 이곳에 적토마 그림이 걸려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임진왜란 이후 전국적으로 관왕묘가 생기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 무렵 즈음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관우장군을 숭배하는 관왕묘 신앙과 말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말(馬)신앙이 복합된 형태로, 신화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발전한 민간신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장군신에 대한 제사는 관청이 주관해 왔으나, 당곡리로 이전한 후에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사람들이 유교식으로 직접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에 있는 신당.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2호. 동제당(洞祭堂)의 일종으로 중국 삼국시대의 12장군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장군신은 관우(關羽)·장비(張飛)·제갈공명(諸葛孔明)·조자룡(趙子龍)·황충(黃忠)·강유(姜維)·마초(馬超)·마속(馬謖)·요화(寥化)·비위(費褘)·마축(麻竺)·위연(魏延) 등이지만, 그 가운데 주신은 관우이므로 관우신당(關羽神堂) 또는 관왕묘(關王廟)라고도 한다.

이들 12장신의 영정을 모신 기와집 옆에는 관우의 말인 적토마(赤兎馬)의 그림을 걸어놓은 조그마한 별각(別閣)이 있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군대가 왜군을 물리친 것이 관우의 음조(陰助)라 하여, 서울에 1599년(선조 32)에 남묘(南廟), 1602년에 동묘(東廟)를 세우고 국가행사로 제사를 지내면서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이 무렵 영동에도 하고자리에 관왕묘가 세워졌다.

그러던 것이 1908년에 나라에서 관왕묘의 제사를 폐지하자 지방의 관왕묘는 거의 없어져버렸는데, 영동에 아직 이 관왕묘가 남아 있는 것은 당시 영동군수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서 관왕묘의 복원과 제사를 원하므로, 군수가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옮기고 12장신당이라고 부르게 한 덕분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곳을 신당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당곡이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왕묘의 제사는 원래 관행제(官行祭)였으나, 이곳 당곡리로 신당을 옮긴 뒤부터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제로 지내고 있다. 매년 제관을 선정하여 음력 정월 14일 밤에 유교식으로 치른다.

이때 제물은 제전(祭田)을 경작하는 사람이 준비한다. 이것은 관우를 무신(巫神)으로 섬기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민간신앙이 역사적 사실성보다는 신화적인 실재관(實在觀: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이다.

≪참고문헌≫ 文化財誌(忠淸北道, 1982)
≪참고문헌≫ 忠淸北道民俗硏究(金榮振, 淸州大學校論文集 7, 1976)

by 백운 | 2009/07/08 11:42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sonsang4.egloos.com/tb/993073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