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을 물리친 안우 장군

 홍건적을 물리친 안우 장군

    안우는 고려말기 공민왕 때의 장군으로서 탐진 안씨의 시조이다. 벼슬는 1352년 공민왕 1년에 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 지추밀원사를 거쳐 1358년 참지중서장사로서 안주 군민만호가 되었다. 


  때는 1359년 공민왕8년
  고려는 나라안과 나라밖이 어지러을대로 어지러웠다. 그 틈을 타 중국(원)에서 날뛰던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른 도적의 무리인 홍 건적은 괴수 모 자경을 앞세우고 4만의 대군으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 땅으로 쳐들어 왔다.


  의주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고 북사 주영세와 주민 천여명이 살해되었다. 홍건적은 다시 정주 안주 등지를 빼앗으며 갖은 못된 짓을 다하였다.그때 안우는 안주 군민 만호로 있다가 방실등과 함께 적을 맞아 용감히 싸워 크게 이겼다.


  안우는 도망치는 적을 한 놈도 남김없이 잡기 위해 계속 추격 철주에 이르러 소주의 기병(말탄군인)으로 함께 싸워 적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홍건적은 1000여명 떼지어 선주 지현의 양곡을 계속 약탈하고 다녔다. 안우는 또 기마병 천명을 이끌고 공격하였으나 분하게도 그들에게 패하여 정주로 후퇴하였다.

 
  적은 다시 평양까지  쳐들어오니 안우는 이를 공격하여  용감,함종 방면으로 물리치고 다시 추격 2만 여명을 물리치고 적의 장수 심랄, 홍자선 등을 사로잡으니 남은 적은 증산 방면으로 도망쳤다.


  안우는 이방실, 김득배 등과 함께 이를 추격하여 연주 강까지 이르자 적은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 가다가 빠져 죽은 사람이 수천  명이 넘었고 나머지 300여명만이 간신히 압록강을 건너 살아났다. 이어 각지에 흩어져 있는 패잔 병를 소탕하고 돌아오니 공민왕은 중서평장정사로 삼고 추중절의 정랑공신 호를 내렸다.


 홍 건적은 다시 20만 대군으로 고려땅으로 쳐들어 왔다. 안우는 상원수(출정하는 군대을 지휘하는 대장)가 되어 김득배, 이방실 등과 함께 박천, 개천 등지에서 적을 무찔렀으나 철령에게 크게 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왕을 비롯한 관리들과 백성들이 남으로 피난하였고 개경(개성)에 쳐들 온 홍 건적은 2개월간을 우리 국토을 점령하고 온갖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으로 옛 부터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서적과 재산을 불지르고 없애 버렸다.


 이듬해 봄에 정세운이 지휘한 20만 대군과 안우장군이 이끄는 군대와의 협동작전으로 적을 거의 섬멸하거나 압록강 쪽으로 내쫓았다. 큰공을 세우고 의기 양양하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 정세운을 시기하던 재상 김용은 안우를 가만히 불렀다.
  “ 안우장군 ! 어명이니 정세운을 죽이시오.”
  “ 왜? 그 분을 죽인단 말이요?”
  “ 난들 어찌 알겠오 어명이니 어서 시행하시오.”
안우는 영문도 모른채 어명이라는 바람에 정세운을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간사한 김용은 안우가 정세운을 죽였다하여 살인죄를 뒤집어 씌워 대궐로 암송케 하고는 사실이 탄로날까봐 도중에서 죽이고 말았다.


 이와 같이 안우는 내란과 외란으로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어지러운 고려말기에 우리고장에서 태어나 북방 오랑캐의 수차례에 걸친 침입을 번번히 물리쳐 국가의 위기를  면하게한 용맹스런 명장이요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충신이었다


*사원수 모살사건의 정황은?

사원수 모살사건의 정황은 김용이 공민왕의 명령을 사칭하여 안우, 이방실, 김득배에게 정세운의 살해를 사촉하고 그 누명을 씌워 그들을 살해한 사건이라는 설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위의 기록은 조선시대의 사가 유계가 평한 사원수 모살의 공민왕 배후설입니다.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는 김용이 정세운이랑 권력과 왕의 총애를 쟁탈하였음을 김용의 범행동기로써 사원수 모살의 모든 책임을 김용에게만 돌리고 있지만 유계의 평가에서도 나왔듯이 시기심이 많고 잔인한 임금 공민왕의 전(?). 즉 충정왕을 독살하고 조카 석기( 釋器 )를 귀양보내면서 몰래 사람을 시켜가지고 수장시켜버렸으며 요동공격의 장수 인당에게 요동공격의 누명를 씌워 참수하여 그 목을 원에 보내 사과한 것이라던가 신돈을 등용해 개혁하고 내칠 때의 예처럼 토사구팽스러운 행위로 걸림돌을 제거해가면서까지 왕권강화에 주력했다는 점. 김용이 그러한 공민왕의 심복이라는 점. 사원수들이 홍건적을 격파하는 대공을 세움으로써 득세하여 왕권강화에 위협이 되었다는 점 등은 사원수 모살의 동기가 비단 김용뿐만이 아니라 공민왕한테도 존재하고 있었음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김용과 정세운 이외에 정세운과 안우, 이방실, 김득배도 대립하고 있었으니 김용이 그의 조카에게 정세운을 살해하라는 공민왕의 밀지를 위조하여 보내면서 안우, 이방실, 김득배에게 정세운과 그들의 관계를 상기시키며 이들를 부추겼으며 정세운을 살해하라는 김용이 사칭한 공민왕의 밀지를 받은 안우, 이방실이 김득배의 만류로 주저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정세운을 때려죽였고 더 나아가 정세운 이외에 류숙( 柳淑 )까지도 걱정거리라고 하면서 살해하려 했던 사실 등 사원수 모살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이는 김용의 단순한 음모만을 넘어서서 무신정권을 방불케 하는 무장세력들의 주도권쟁탈전의 양상도 보여줍니다. ( 동사강목에서 안정복은 사원수 모살은 흉악한 짓을 한 김용의 죄뿐만 아니라 정세운을 살해하였던 안우, 이방실, 김득배의 자업자득이라고도 평가합니다. ) 이러한 김용과 공민왕, 그리고 사원수들의 동기 및 행동양식을 참고해볼 때 사원수 모살의 숨겨진 진상은 공민왕이 김용 및 무장세력들 간의 대립을 이용 김용의 음모를 묵인 내지는 조장하여 벌어진 정치 10단의 행위였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 그러나 이렇게 고난도의 정치술수를 선보였었던 공민왕도 이후 김용이 일으켰던 흥왕사의 변 때 김용이 처형되자 눈물을 흘리면서 믿을 자가 없다고 탄식했다는 기록을 보면 뒷통수를 맞은듯 싶습니다. ) 사원수 모살의 공민왕 배후설은 그 음모론의 연원이 조선 때임을 감안하더라도 꽤 흥미로운 학설입니다

by 백운 | 2009/05/20 00:14 | 여행관련자료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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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내눈을바라봐 at 2017/06/09 13:51
동사강목은 그냥 안정복이나 일부 소수가 쓴 사관이라서 신빙성은 그다지 없습니다. 동국통감이야말로 오히려 신빙성이 있겠죠. 이건 사림훈구 할것없이 여러 사람들이 다 참여했죠.물론 앞뒤는 좀 안맞는 감이 있으나 조선왕조의 사서 중에선 그나마 앞뒤가 맞죠.

[신등은 살펴보건대,]
“생살(生殺)과 위복(威福)은 임금의 큰 권한이요, 신하로서는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닌데, 어찌 신하로서 대신(大臣)을 궁문(宮門)에서 함부로 죽였는데도 임금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안우(安祐)가 전쟁에 이기고 돌아와서 행궁(行宮)에 나아가 문에 들어설 때 김용(金鏞)이 문지기를 시켜 타살하였는데도 왕이 모르고 있었으니, 이는 반드시 왕의 좌우에 있는 자들이 모두 김용의 심복(心服)으로서 임금의 이목(耳目)을 가로막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김득배(金得培)·이방실(李芳實)의 죄를 터무니없이 꾸미어 분리해서 붙잡아 죽였으니, 왕의 혼암(昏暗)하고 밝지 못함이 어떻게 이토록 심합니까? 김용이 신하로서 섬기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은밀히 간직하고서 공(功)이 높은 자는 시기하고 명성(名聲)이 대단한 자는 미워하여 베어서 제거해 버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의 계획함이 어찌 이 정도에 그치고 말았겠습니까? 먼저 그 간교함을 부리다가 뒤에 대악(大惡)을 드러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춘추 시대(春秋時代) 송(宋)나라 대부(大夫) 환퇴(桓魋)가 공자[孔父]를 죽이려 하였는데5), 마침내 그의 임금 경공(景公)을 배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 김용은 세 원수(元帥)를 죽이고서 얼마 안되어 흥왕사(興王寺)의 변란6)이 있었으니, 난신 적자(亂臣賊子)의 포악한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제가 볼때 안우,이방실,정세운,김득배 4원수 모살사건은 한마디로 전란이 터졌을때 명령체계가 매우 썩었다는 것이죠. 왕이 보통 전란중에 피난이다 무엇이다 해서 도망을 가게되면 최소한의 명령까지도 놓았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김용이 처형되자 눈물을 흘리면서 믿을 자가 없다고 탄식을 했는데 본인도 과연 믿을 행동을 했는지 돌아봐야죠. 당장에 충정왕을 독살하고 안당에게 했던 것을 돌아봐야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의심하며 죽이는 왕은 전형적인 폭군이나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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