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가는 길 - 중국 집안 칠성산고분군 전서천왕릉(211호분)


고구려 가는 길 - 중국 집안 칠성산고분군 전서천왕릉(211호분)


  


   칠성산고분군은 집안현(集安縣) 노령산맥의 지맥인 칠성산의 남쪽기슭에 군(群)을 이루고 있는 고구려시대의 고분군이다. 총 1,708기의 고분이 조밀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석분류(石墳類)가 855기, 토분계통(土墳系統)이 853기이다. 고분은 칠성산 기슭을 따라 가족 및 혈족단위별로 구역화되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어 고구려사회의 묘지조성방식의 일단을 알게 한다. 한 집단의 고분은 대개의 경우 산허리에서부터 일렬로 크고 작은 순서에 따라 차례로 되어 있으며, 고구려 초기의 묘제인 석분의 경우 이와 같은 경향이 현저하다. 토분들은 시대적 선후관계에 따른 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 혈족에게 부여된 묘역이, 오랜 기간이 흐르는 동안 축조된 고분의 증대로 부족하여진 때문인 듯하다. 많은 수의 봉토석실묘는 석분들 사이의 공간에 질서 없이 배치된 경우가 많다. 이 고분군은 고구려묘제의 변화·발전과정과 묘역의 구분, 분묘의 배치방식 등을 밝히는 데에 주요한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


 



▲칠성산


 



▲전서천왕릉


 



▲전서천왕릉


 


   칠성산 아래에는 왕릉급 고분인 211호 무덤이 있다. 국내성 최대 고분으로 밝혀진 221호 무덤은 한 변의 길이가 무려 71 m, 다른 쪽이 61m, 높이 16m로 거대하다는 태왕릉보다 훨씬 크다. 안타깝게도 이 무덤의 가운데부분은 도굴 등으로 매우 심하게 훼손돼 무덤 가운데까지 파헤쳐져 거의 쌍분 모양으로 변한 상태다. 무덤 꼭대기에 자잘하게 흩어져 있는 돌 위에서 무늬가 없는 잿빛 널기와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286년 모용 선비족이 도굴하려다 실패했던 서천왕의 무덤일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무덤 옆에는 무덤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의 흔적이 잘 보존돼 있다. 그 동안 주위에 수십 여 채의 집이 가리고 있어서 국내학자들의 답사 때 눈에 띄지 않았으나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중국 당국이 최근 가옥을 완전 철거, 지금은 길가에서 쉽게 바라볼 수 있다.


 



▲전서천왕릉


 



▲전서천왕릉


 



▲전서천왕릉


 


○二十三年, 王薨, 葬於<西川>之原, 號曰<西川王>.


23년, 왕이 별세하였다. 서천 언덕에 장례를 지내고, 호를 서천왕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서천왕>


 


   서천왕(西川王, ?~292년, 재위 270년~292년)은 고구려의 제13대 군주이다. 이름은 약로(藥盧) 또는 약우(若友)이고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다. 서양왕(西壤王)이라고도 한다. 서천왕릉은 296년에 모용외(慕容?)가 쳐들어왔을 때 도굴당했는데, 이때 도굴하던 자들이 갑자기 죽고 무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와 이를 두려워한 적군이 퇴각하였다고 한다.


 



▲전서천왕릉


 



▲전서천왕릉


 



▲전서천왕릉


 


五年, 秋八月, <慕容?>來侵, 至<故國原>, 見<西川王>墓, 使人發之, 役者有暴死者, 亦聞壙內有樂聲, 恐有神乃引退. 王謂群臣曰: “<慕容>氏, 兵馬精强, 屢犯我疆?, 爲之奈何?” 相國{國相} <倉助利>對曰: “北部大兄<高奴子>, 賢且勇. 大王若欲禦寇安民, 非<高奴子>, 無可用者.” 王以<高奴子>爲<新城>大守{太守} . 善政有威聲, <慕容?>不復來寇.

5년 가을 8월, 모용 외가 침입하여 고국원에 이르렀다. 그는 서천왕의 무덤을 보고 사람을 시켜 파게 하였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 중에 갑자기 사망자가 생기고 또한 광중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귀신이 있는 것으로 알고 겁을 내어 곧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모용씨는 군대가 강력하여 우리 강토를 여러 차례 침범하였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국상 창조리가 대답하였다.


“북부 대형 고노자는 어질고 용감한 사람입니다. 만약 적을 방어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면 고노자가 아니면 쓸 만한 자가 없을 것입니다.”


왕이 고노자를 신성 태수로 삼았다. 고노자는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았다. 모용 외는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봉상왕>


 



▲전서천왕릉


 



▲전서천왕릉


 


 


 


<2011. 8. 2>


 


by 백운 | 2015/07/11 07:15 | 여행관련자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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